— oleeve.com

이것이 내가 보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암흑뿐이다. 자연은 내게 회의와 불안의 씨만 제공한다. 신을 나타내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부정으로 마음을 정할 것이다. 도처에 창조주의 표적을 볼 수 있다면 나는 믿음 속에 안식할 것이다. 허나 부정하긴 너무 많이 확신하긴 너무 적게 보니 나는 개탄할 상태에 있다. 만약 신이 있어 자연을 뒷받침하고 있다면 자연이 신을 명확히 드러내 주거나 자연이 보여주는 표적이 거짓이라면 그것들을 깨끗이 지워버리기를. 어느 편을 택할지 알 수 있도록 자연이 모든 것을 말하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내가 놓여 있는 상태에서 내가 뭔지, 뭘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는 나의 신분도 의무도 모른다. 내 마음은 진정한 선을, 그것을 따르기를 온전히 바란다. 영원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비싸지 않다. (파스칼, 팡세)

원한다면 우리는 행복없이 지낼 수 있다. 우리는 행복을 기대한다. 만일 행복이 안 온다면 희망은 지속되며 환영의 매력은 그것을 준 열정만큼 지속된다. 이 상태는 자체로서 충족되며 그 근심에서 나온 일종의 쾌락은 현실을 보완하고 더 낫게 만들기도 한다. 원할 게 없는 자에게 화 있으라. 그는 가진 것을 모두 잃는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덜 기쁜 법. 행복해지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

– 영화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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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발굴조사 알바 나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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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어느날 뉴스를 검색하던 그는 ‘별의 동굴’이란 단어에 시선을 멈췄다. 아프리카의 한 동굴에서 고대 인류의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몸이 작은 여성 과학자들이 25센티미터도 안되는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갔을 때, 거기에는 천오백여개의 유골들이 가지런히 정돈된 형태로 놓여 있었다. 과학자들은 장례의식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죽음 이후를 상상한 최초의 인류에게 ‘호모 날레디’라는 이름을 붙였다. 별의 인간. 그들이 발견된 동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는 처음 동굴 안으로 들어간 과학자들이 보았을 수없이 많은 화석의 풍경을 상상해보았다. 바닥에 흩어진 것처럼 보였겠지만 누군가의 애도에 의해 그들이 살았던 생의 내용과 그 질서를 전해주었을 화석들. 불현듯 자신이 먼 훗날 그해 여름을 별의 동굴이란 말로 기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 은희경, 별의 동굴, 중국식 룰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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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거나 운전을 하면서 수없이 강변을 지나쳤지만 그날처럼 불빛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단 한번 우연히 마주쳤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두사람이 나란히 앉아 바라보는 짧은 봄밤의 강변 풍경. 고층 빌딩과 가로등의 불빛에 둘러싸여 검은 강물은 계속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고 그 위로 시간이 조심스레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불빛이란게 이렇게 요란한 줄 몰랐네. 축제 같다. 근데, 남의 축제. 내 축제일리가 없어. 남의 축제에 왜 왔는데? J가 말했다. 몰랐지. 내가 이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다시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는 모든 게 다 진짜였는데. 그건 다 어디로 갔을까.
너 그 시 알아? 명절 때 신으라고 아버지가 아이한테 신발을 사줬는데, 개울물에서 장난하고 놀다가 그만 떠나보낸 거야. 다시 신발을 사다 신겨줬지만 아이는 어디까지나 그건 대용품이라고 생각해. 진짜 아닌 대용품을 신고 명절을 맞이해야 했던 거지.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 그래, 내가 스스로 신발을 사 신게 된 뒤에도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도 나는 아직 대용품으로 신발을 사 신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게. 잃어버린 그 진짜 신발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지금은 어디에 있는 걸까.

– 은희경, 대용품, 중국식 룰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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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가 사다 주신 내 신발을 나는 먼 바다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에서 장난하고 놀다가 그만 떠내려 보내버리가 말았읍니다. 아마 내 이 신발은 벌써 邊山(변산) 콧등 밑의 개 안을 벗어나서 이 세상의 온작 바닷가를 내 대신 굽이치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어버지는 이어서 그것 대신의 실발을 또 한 켤레 사다가 신겨 주시긴 했읍니다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용품일 뿐, 그 대용품을 신고 명절을 맞이해야 했었읍니다.
그래, 내가 스스로 내 신발을 사 신게 된 뒤에도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 나는 아직 대용품으로 신발을 사 신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그대로 있습니다.

– 서정주,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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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악순환은 수세기 수천 년 지속되면서 역사적으로 우연히 발생한 질서에 불과한 상상의 위계질서를 지속시킬 수 있다. 부당한 차별은 시간이 흐르면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돈은 돈 있는 자에게 들어오고, 가난은 가난뱅이를 방문하는 법이다. 교육은 교육받은 자에게, 무지는 무지한 자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역사에서 한번 희생자가 된 이들은 또다시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의 특권을 누린 계층은 또다시 특권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사회정치적 차별에는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만일 흑인과 백인의 구분, 브라만과 수드라의 구분이 생물학적 실체에 근거를 두었다면 어떨까? 만일 브라만이 정말로 수드라보다 더 나은 뇌를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인간사회를 이해하는 데는 생물학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각기 다른 집단이 지니는 생물학적 차이는 사실상 무시할 만한 수준이므로, 생물학적으로는 인도 사회의 곡절이나 인종차별의 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상상의 산물을 잔인하고 매우 현실적인 사회구조로 바꿔놓은 사건들, 조건들, 권력관계들을 연구해야만 비로소 그런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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