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면서도 우아하게

달팽이의 생활방식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을 발견한 곳은 “육상 연체동물의 생물학” The Biology of Terrestrial Molluscs에서 토니 쿡이 쓴 ‘행동생태학’이라는 제목의 장이었다. “되도록 자주 은폐된 장소에 숨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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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때문에 언제나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동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나 자신의 생존이나 내가 속한 종의 생존문제가 아니라 생명 자체가 진화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임을 깨달았다. 신생대의 마지막 시기인 홀로세때처럼 갑자기 대멸종 사건이 일어난다면 과연 어떤 종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까?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새로운 생명체들이 이 세상에 나타날까? 그 옛날에 과연 그 어떤 생명체가 우리 간은 인간이 세상에 나타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지금 우리 인간이 이 지구에서 연체동물과 함께 사는 것은 행운이다. 연체동물이 살아온 시간은 우리 인간이 세상에 나온 것과 비교하면 너무도 긴 역사다. 육상달팽이, 그들은 앞으로도 낮이 되면 지구의 광대한 풍경을 가로질러 자신들이 파놓은 굴속으로 몸을 숨길 테지만 어두워지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밤새도록 느긋하면서도 우아하게 미래를 향해 수백만 년을 미끄러지듯 조용히 기어가면서 그들의 신비스러운 삶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다.

–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달팽이 안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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