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준이는 에이, 왜 이렇게 진지한 분위기예요, 하고는 음료를 가지러 갔다. 온풍기 바람이 테이블 위의 촛불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나는 음영들은 어떤 몽상들을 불러냈다. 어두은 보일러실 계단을 내려가는 촛불의 움직임이었다. 따뜻하다.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따뜻함이 거기에 있다. 따뜻함은 너무 따뜻해서 잊게 하지. 강철의 추위나 모욕감 같은 것을. 그리고 잠들게 하는 것이다. 상상했던 모든 것을 잊어버리도록, 발을 쭉 뻗고 팔베개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꿈도 꾼다. 집으로 가는 꿈을. 거기에는 어린 딸이 기다리고 푹신한 담요가 있다. 그러다 운이 나쁘면 어쩌다 좀 방심하다보면, 이유는 알 수 없는 거대한 불행이 일어나기도 하고 거기에 휘말리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얼마나 하잘것없는, 특별할 것 없는 몽상들일까. 나는 마음 한편에 이는 불안을 꺼뜨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상준이가 가져온 진한 커피와 추로스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단맛이 있구나 하고, 어찌되었든 오늘도 단맛이 있는 날이긴 하네, 하고.
– 김금희, 보통의 시절.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